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토요일 오후 4시, 점심 먹기엔 늦고 저녁 먹기엔 이른 어중간한 시간에 배가 출출해져서 뭘 먹을까 고민하던차에 정직한 간판 하나가 눈에 딱 들어오더군요.

 

 

바로 '단박왕돈까스'입니다. 요즘처럼 화려하고 삐까뻔쩍한 간판들 사이에서 '나 여기 있소'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랄까. 어릴 적 아버지 월급날 따라갔던 경양식집 생각도 나고 해서 망설임 없이 들어갔습니다.

 

 

어중간한 시간에 찾아온 덕에 가게 안은 한산했습니다. 덕분에 기다리는 거 딱 질색인 저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웠지요. 가게가 널찍하고 테이블도 많아서 여유롭게 식사하기 좋아 보였습니다.

 

 

메뉴판을 보니 역시나, 메뉴가 복잡하지 않습니다. 이래야 진짜 맛집 아니겠습니까. 이것저것 고민할 것 없이 돈까스, 함박, 생선까스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이 집의 대표 메뉴 '금왕정식'으로 주문했습니다. 저는 양 많은 아저씨니까 당연히 곱빼기, 아내는 기본으로 시켰지요.

 

 

주문을 마치니 수프와 깍두기, 단무지가 먼저 차려집니다. 후추 톡톡 뿌려진 따끈한 크림수프 한 숟갈 떠먹으니 "아, 이제 돈까스 먹을 준비가 됐구나" 싶더군요. 이 맛에 경양식집 오는 거지요.

 

 

테이블 위에는 케첩, 우스터소스 같은 양념통과 수저, 물컵이 단정하게 놓여 있습니다. 뭐 하나 복잡한 것 없이 딱 필요한 것만 있는 모습이 이 집의 우직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.

 

 

드디어 주문한 '금왕정식'이 나왔습니다. 위쪽이 아내가 시킨 기본, 아래쪽이 제 곱빼기입니다. 이야... 곱빼기는 정말로 돈까스가 두 장이더군요. 이름만 곱빼기가 아니라 진짜로 양을 두 배로 주는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에 감탄했습니다. 접시 가득 채운 돈까스와 함박, 생선까스, 그리고 저 오이고추 하나가 아주 조화롭습니다.

 

 

먼저 주인공인 돈까스부터 맛을 봤습니다. 고기 두께와 튀김옷 두께의 조화가 아주 좋더군요. 고기 맛을 해치지 않는 얇고 바삭한 튀김에 새콤달콤한 소스가 듬뿍 올라가니, 딱 어릴 때 먹던 맛있는 돈까스 맛 그대로였습니다.

 

 

두툼한 함박스테이크는 한입 먹어보니 신기하게도 전혀 맵지 않은 제육볶음 같은 맛이 나서 재밌었습니다. 밥반찬으로 아주 좋더군요. 생선까스는 담백한 생선살의 살짝 푸석한 느낌을 바삭한 튀김옷과 타르타르 소스가 꽉 채워줘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.

 

이 집의 구성 중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오이고추입니다. 돈까스와 함박을 번갈아 먹다가 중간에 아삭하고 시원한 오이고추를 한입 베어 무니 입안이 개운하게 정리되면서 느끼함이 싹 가시더군요.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.

 

 

결국 저는 곱빼기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. 돈까스 한 장은 거의 손도 못 대고 포장을 부탁드렸지요. 집에 와서 저녁에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남은 돈까스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합니다.

 

푸짐한 양은 물론이고 추억의 맛까지 느낄 수 있었던 '단박왕돈까스'. 오랜만에 정말 기분 좋고 배부른 식사였습니다. 저처럼 양 많고 옛날 돈까스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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